죽령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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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옛길


희방사역에서 무쇠달마을을 보고 섰을 때, 왼편으로 난 길이 장장 1900여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죽령옛길’입니다. 지금은 가벼운 산책으로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정비가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산세가 험해 지나기 수월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양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었기에 과거 길에 오르는 선비들, 봇짐을 멘 보부상 등 많은 행인들이 오갔으며, 때문에 산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 할머니가 ‘다자구야, 들자구야’하며 산적을 소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유명한 ‘다자구 할머니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이 ‘죽령옛길’입니다. 숲길로 접어들어 조금 더 걷다보면 ‘죽령 주막터’를 만날 수 있는데 물론 그 옛날의 주막은 아니지만 탐방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평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평상에 가만히 앉아 바람에 나뭇잎 사락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가마솥, 막거리 한사발, 국밥 한 사발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서는 옛 조선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여행지로서 더욱 각광받고 있지만 오랜 세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중심 길이었던 죽령옛길은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남다르며 2007년에는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희방사역으로부터 2.5km에 이르는 구간으로 도보로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0호 지정, 2007.12.17

  •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96m의 죽령.
    삼국사기에 『아달라왕(阿達羅王) 5년(서기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개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고 엎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왕이 거칠부(居漆夫) 등 여덟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기록(삼국사기)으로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 만합니다.

    서기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이며,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습니다. 죽령(竹嶺)옛길은 장장 2천년의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 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길입니다. 이 길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끊겨 수십년 동안 숲과 덩굴에 묻혀 있었습니다.
    역사의 애환을 간직하며 2천년 가까운 세월, 영남 내륙을 이어온 죽령의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려는 뜻에서 1999년 영주시가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까지 1시간 정도(2.5km)걸리는 길을 복원하였습니다. 울창한 숲의 나무과 산새, 다람쥐 등이 반기는 산길을 걸으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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